P.S. Sorry So Sloppy*
그래서 이토록 많은 병들이 필요했을까 모든 편지는 액체로 이루어진다
다만 식어가는 것
정서(正書)란 긴 간빙기의 끝을 예감하는 자세일 따름이겠지
이것을 읽을 수 있다면 곧장 집으로 가도록 해 부서지고 있는 것들은 결코 부서짐을 의미하지 않을 테니
식사를 마치거나 충분한 잠에서 깨어나거나
엉기기에 너무 맑은 피와 언제까지고 미미한 어지럼으로
이 일교(日較)를 건너가기를
칼끝에서 피어나는 연필밥과 말라가는 꽃잎 사이에는 아무런 거리가 없고 억지로 꽂힌 서표들은 남은 장(場)을 씹으며 부풀기 시작한다
악필에는 서체가 없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화인(火因)이다
휘발하지 않으면 결국 투명해지는
과거를 점칠 때 우리를 증언할 것은 고르지 못했던 호흡들만이 아니겠니
파다한 입김은 사람을 흐리게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밤새 흰 밤을 기다려
우리가 속으로만 흐르는 것은 설얼었기 때문이야
빈 욕조에 몸을 잠그는 대신 나는
여기에 몇 개월 치의 온도를 묻어두기로 한다 무른 이를 가진 사람들이 찾아와 곡을 하고 거기에 베이는 날들이 여전하다
그러나 두 눈을 기꺼이 덮어주던 성에에게는 용서를 구하고 싶다
해가 지지 않는다면 대체 무엇으로 응달을 셀까
이 천착이 모자라 내 각들이 죽어간 거라면
그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 Six Gallery의 곡명
망년
꿈을 덜 꾸게 될 거란 말에 쌀 한 줌을 물고 누웠다
전생에 잘린 꼬리가 간지러워 잠에서 깼더니 과연 그렇구나
다시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누워서 걷고 누워서 먹고
이것이 나의 균형이라면
몇 개의 선택지가 남았을까 어떤 날에는 길에서 외국 지폐를 주웠고
누가 그랬지 탕진해버릴 게 아니라면 본 척도 말라고
그러나 낯선 위인의 눈매는 드물고 선했다
주인 모를 당부들은 묶어 그늘에 말렸다
날 선 것은 쌍으로 두었고 싹이 돋으면 요리를 배웠다 그러니 고온과 습기는 피하라고 상한 건 파묻고 새는 건 잠그라고 알람과 전화가 번갈아 울리고
장수한다고 밤이 더 길어질까요
나는 내가 먹어치운 것들이 부러워요
노크가 그치고
사람이 떠난 잔에 끓인 물 한 번을 더 붓는 일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면 경건한 마음이 되었다
읽을 수 없어서 어떤 명언에는 믿음이 갔듯
미래를 예습한다는 구실은 지하에 들기에 좋았다 이곳에서는 눈이 키보다 높게만 쌓여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서늘한
달력 뒤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구나
네모난 빛이 걸린 벽
그런 나라는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